[충남서부보훈지청] 독립으로의 첫걸음
인간의 생각과 삶의 양식은 시대에 따라 달라지기 마련이지만 인간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105년 전 태극기를 흔들며 대한독립을 외쳤던 그들의 심정을,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도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105년 전에 있었던 이 사건은 한 사람의 삶보다 긴 과거의 이야기다.
당시 한반도의 상황은 좋지 않았다. 일제의 강압적인 태도는 많은 희생을 가져왔다. 국내 상황과는 달리 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세계는 ‘민족자결주의’에 주목하기 시작한다.
세계적 흐름에 맞춰 우리도 파리, 만주 등 세계 각지에서 움직이기 시작했다. 1918년 상하이를 중심으로 활동하던 독립운동가들이 결성한 신한청년당. 이들은 1919년 파리강화회의에 김규식을 한국민족대표로서 파견했다. 이 사실은 3.1 운동의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한편 중국 길림성에서는 중국으로 망명한 조소앙, 신채호 등이 1918년 2월 1일에 조국독립선언을 발표한다. 이는 후에 무오독립선언이라 불린다. 이 선언 또한 3.1운동의 초석이 되었다.
1919년 3.1일 탑골공원과 태화관에서 독립으로의 첫걸음이 시작된다. 손병희 등 민족대표 33인이 오후 3시 경성부 태화관에서 독립선언서를 낭독했다. 이들은 조선이 독립국임을 선언했고 총독부에 전화를 걸어 독립선언 사실을 알렸다.
한편 태화관에서 약간 떨어진 탑골공원에서는 경신학교 출신 정재용이 팔각정에 올라가 독립선언서를 낭독했다. 그가 선언서를 낭독한 순간 하늘에는 수많은 태극기와 선언서가 쏟아지고 있었다.
3.1운동은 수개월에 걸쳐 한반도 전역과 세계 각지에서 벌어진 비폭력 시민 불복종 운동이다. 또한 제헌 헌법에 나와 있듯이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상징하는 사건이자 건립 토대가 되는 역사적 사건으로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에 영향을 준다. 이후 독립운동가들이 써나간 역사들을 생각해보면 3.1운동이 실로 위대한 사건이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매년 3.1일이 되면 독립을 위해 투쟁한 분들에 대해 조금 더 생각하는 계기가 된다. 누군가에겐 평소와 같은 하루일지라도 그분들의 희생을 생각하면 지금의 삶에 감사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그분들을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많지는 않겠지만 그저 누군가와 역사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만으로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역사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어떠한 사건이 계속해서 사람들에게 기억되려면 사람들 사이에서 이야기로 전해져야 하는 것처럼 어떠한 사건이 시대를 넘어 사람들에게 기억돼야만 비로소 역사가 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오는 3월 1일에는 3.1 운동에 대해 주변인들과 가볍게 이야기하고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과거는 그대로 반복되진 않더라도 반드시 그 운율은 반복되는 것처럼 역사는 항상 반복되는 성질이 있다. 왜냐하면 우리 인간은 역사의 관찰자이기 전에 역사적 존재고, 인간의 본질은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과거에서 배우고 성찰해야 한다.
그리고 배운 점을 후대에 알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평가는 후대의 몫이다.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다.”라는 말처럼 본래 역사에 대한 평가는 시대에 따라 바뀔 수 있다. 그러나 3.1운동은 대한민국이 존재하는 한 우리 선열들의 위대한 독립운동으로 기억될 것이다.